Ronald. L. Meek, Studies in The Labor Theory of Value, 2nd ed., Monthly Review Press, 1973, pp.164~165.


맑스의 가치 개념을 투하된 노동으로 다루면서 지금까지 우리는 ‘추상 노동’과 ‘유용 노동’이라는 중요한 구분(맑스가 “정치경제학의 이해해서 결정적인 도약점”이라 생각한 구분)을 무시했다. 논의를 이어 가기 전에 맑스 분석의 이 부분에 관해 몇 가지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사용가치는 “객관적으로는 생산물을 효용” 혹은 “주관적으로는 노동의 유용함”으로 고찰될 수 있다. 사용가치가 이런 의미에서 ‘주관적’으로 이해되면 유용한(혹은 ‘구체적인’) 노동이라는 개념이 생겨난다. “일정한 합목적적인 생산활동”으로 정의되는 유용노동은 사용가치의 창조자이며, “그 사회형태가 무엇이든 그것과는 무관하게 인간의 존재조건”이다. 하지만 맑스에 따르면 가치 안에서 표현을 발견하는 노동은 “사용가치의 창조자로서의 특징을 지니지 않”는다. (사용가치와 구분되는)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은 추상노동, 즉 여러 종류의 활동 사이의 모든 차이를 추상한 생산활동 그 자체다. 마찬가지로 상품을 가치로 고찰할 때 우리는 그 상품들의 사이한 사용가치들을 추상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로 표현되는 노동에서도 그 유용형태의 차이, 즉 재단노동과 방직노동의 차이는 배제된다.” 이 관점에 따르면 노동은 노동이 생산하는 상품과 마찬가지로 “이중적 성격”을 지닌 것이다.

추상노동이라는 혹은 노동 일반이라는 이 개념은 “대다수 근대 사회의 한 범주로서만 진정으로 실현된다”. 그리고 그 사회는 “개인들이 이 노동에서 저 노동으로 쉽게 옮길 수 있고, 그 덕분에 어떤 특수한 노동이 그들 몫이 되는지가 그 개인들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회다. 하지만 이 추상은 하나의 관계를, 생산물들이 상품들로 처음 전환된 아주 오래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관계를 표현한다. 맑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 썼듯 이 오래전 시기는 노동이 “개개인의 노동이 보편적 노동이라는 추상적 형태를 취한다는 사실로부터 그것의 사회적 성격을 획득”하기 시작한 시기다. 여기서 맑스의 요점은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을 위해 노동하기 시작하던 그 순간부터 노동이 반드시 사회적 성격을 지님을 전제해야 하지만, 이 사회적 성격을 드러내는 구체적 형태는 시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

Posted by 구멍 the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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